2007년 3월의 마지막날 오래된 친구들과 꽃놀이를 다녀왔다.
원래는 눈물처럼 후두둑 떨어진다는 선운사 동백을 보러 갔었는데
온 산이 불타듯 빨간 모습을 기대했던지라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에 살짝 실망해버렸다.
오죽하면 나오는 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입구를 지키던 아저씨에게 정말 이게 다냐고 물어봤을까..
선운사에서 동백을 보고 쌍계사로 핸들을 돌리기까지
선운사의 기록을 먼저 남긴다.
禪雲山歌碑
선운사 가는 길에 미당 서정주의 생가가 있다.
선운사가 지척이니 '선운사 동구'라는 시가 나왔겠지..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미당의 시에 송창식의 노래에 낚여서 갔는데
선운산가비에는 선운사 동구가 아닌 엉뚱한 시가 있어서 어리둥절~
다람쥐구멍
선운사로 들어가던 길에 어디선가 다람쥐 한마리가 나타났다.
다람쥐가 너무 귀여워서 부지런히 사진기를 꺼냈는데
낯선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여기저기 뒤적거리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쪼로로 달려가더니 저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구멍이라도 한 컷~
사찰 뒤로 동백이 보인다
뒷산의 동백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수선화가 눈길을 끈다.
비가 막 그쳐서 스산한 날씨에 노오란 빛을 내뿜으면서 온몸으로 봄을 알린다.
동백만 보고 가기엔 미안할 정도로..
선운사 뒷산의 동백나무들
짙은 초록의 두터운 잎 사이로 빠알간 동백이 점점이 박혀있다.
불타오르는 동백나무숲을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잎이 무성한 상태에서 피어나는 동백에게 너무 많은걸 기대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동백이 만발하는 시기가 안된건지 알 수 없으므로 동백을 탓할 순 없다.
동백은 무리지어 보는 것보다 하나씩 보는게 훨씬 예쁘다.
그동안 본 동백 사진이 접사가 더 많았던 이유를 가서 보고야 알았다.
하지만 수전증이 있는 상태에서 핸펀으로 노출까지 최대로 해놓고 접사는 무리 ㅠㅠ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동백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게 아니라
꽃 한송이가 한꺼번에 후두둑 떨어진다.
그 모양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일까?
후두둑 떨어지는 찰나의 모습은 못 봤지만
바닥에 지천으로 널린 꽃들만 봐도 왠지 안타까운 느낌이다.
후두둑 떨어진 동백과 제비꽃이 어울린다.
동백은 제 가지에서 떨어져나와 슬퍼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강렬한 빨강과 청초한 보랏빛에 싱그러운 초록의 조합이 참 예쁘다.
비가 막 그친 후라 선운사를 둘러싼 산들에 구름이 덮여있는 모습이 고즈넉하다.
선운사가 왜 선운사인지 느끼고 싶다면 비 그친 뒤에 찾아갈 것을 추천한다.
선운사 마당가에 있는 목련 한그루에 꽃이 그득하다.
아직 봉오리가 덜 핀 목련도 활짝 핀 목련도 제각각의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목련꽃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절답지 않게 화사하고
목련 나무 가지에 오롯이 올라있는 새집이 정겹다.
선운사 밖으로 나와서 조금 걸어가면 차밭이 나온다.
어느 스님이 덕을 쌓기 위해 작은 밭을 일구기 시작해서 지금은 8만평이 된다는데
스님 혼자 그 넓은 밭은 가꾼다는 얘기에
속세의 우리들은 설마 그밭을 혼자 갈겠냐며 쑥덕거렸다.
그저 범인에 불과한 우리가 스님의 뜻을 어찌 알겠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진짜 그 밭을 혼자 가꿀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동백 말고도 수선화니 목련이니 멋스러운 구름이니 구경 잘 해놓고
선운사에서 나오는 길엔 동백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떠들어대며
혹시 다른 동백이 더 있는데 우리가 못 본게 아닐까 싶어
선운사 입구를 지키던 아저씨에게 다른 동백숲이 있는지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로
의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우리는 미처 채우지 못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선운사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풍천 장어로 요기를 하고
벚꽃이 흘러넘치는 쌍계사로 발길을 돌렸다.